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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 논쟁 3 : 홍수는 있었는가?

신학과 변증

by 오렌목사 2023. 2. 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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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많은 논쟁의 내용중에 하나는 홍수가 있었는가? 인데 여기에는 무수히 많은 논쟁을 야기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펴볼 것은 홍수은 언제 기록되었는가? 그리고 홍수가 있었다면 국지적인 홍수인가? 전지구적인 홍수인가? 그리고 홍수를 일으킨 하나님은 선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세가지를 보려고 한다. 

1. 홍수는 언제 기록되었는가?

 자유주의의 신학을 다루는 신학자는 모세오경을 포로기 이후에 쓰여진 책으로 보고 있다면 나는 보수적인 입장에서 모세시대나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작성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입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포로기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 바벨론의 메소포타미아의 기록을 보고 참고하여 노아의 홍수를 기록을 했을 것으로 보았을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반면에 보수주의적인 입장에서는 홍수의 공통설화이기 때문에 참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모세가 기록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공통설화라고 하는 것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화나 이야기를 의미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왕이 될 사람은 알에서 태어나는 것을 통해 인물의 비범한을 알리는 문화가 있고 서양 특히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곳은 신과 인간의 혼인이나 관계를 통해 태어난 인물을 영웅으로 칭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문화적인 접촉점도 다르고 이해도 다른 곳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나타나는 이야기들이 몇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홍수이야기이다. 홍수 이야기는 여러나라에서 그 흔적이 이스라엘은 노아의 홍수로 나타나고 수메르(메소포타미아)에서는 우트나피쉬가 있다. 그리스에서도 홍수가 나오고 중국의 신화에서도 홍수가 나서 치우가 나타나 해결한 것으로 나오고 북미의 인디언에게도 홍수이야기를 발견이 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지역에서 상관관계가 없어보이는 지역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홍수의 이야기를 인류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록으로서 가장 오랜 된 것은 우트나피쉬가 맞고 노아의 홍수가 따라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수메르와 가까운 다른 지역의 홍수와 비교했을 때 다른 부분이 발견이 되는데 그것은 우트나피쉬와 그리스홍수를 보면 신들 인간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갑자기 숫자가 늘어나고 땅은 시끄러워져서  귀찮아서 홍수로 사람을 쓸어버리기로 한것이다. 단순히 시끄럽다는 이유이다. 하지만 노아의 홍수는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홍수를 일으키시기 한 것이다. 노아와 우트나피쉬는 동일한 내용을 기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트나피쉬는 홍수를 통해 신들은 만족을 했고 자신의 권능을 보여주었다는 것에 만족해 하였고 우트나피쉬팀은 그의 아내와 함께 영생을 얻는 것으로 나와 있다. 반면에 성경의 노아는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인류를 다시 시작하시기로 하였고 다시 홍수로 사람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노아 이후에 인간의 수명을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만약 자유주의 학자들의 의견대로 노아의 홍수를 바벨론 포로기 이후 수메르신화를 베낀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권능 보여주고 끝나고 의롭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노아가 에녹과 같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땅에 살게 하다가 죽었는가? 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홍수 전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만들었고 방주에서 내려서 하나님에 축복을 받았는데 왜 그 이후의 노아는 술취하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이 따라서 베껴 만들었다고 한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만약 우트나피쉬에 나오는 것을 따라서 만들었다면 노아를 저렇게 치부를 드러내는 사람으로 바꾸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된다. 노아는 인류의 대표가 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사람을 저렇게 만드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자 대표적인 부분은 홍수가 발생을 했을 것이며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을 구전 또는 기록물을 통해 남겨졌는데 각 문화의 상황에 따라 각색이 되고 변화가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수메르의 경우 문화적, 지리적 밀접성으로 인해 비숫한 전승이 있었을 것이고 각자의 내용으로 변화가 생기게 되었던 것이라고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다만 노아의 홍수의 기록은 모세때에 기록을 했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만 수메르 신화도 기원전 7-8세기에 기록이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이전부터 기록이 되었던 것을 기원전 7-8세기에 기록이 된 것이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2. 홍수는 국지적인가?  세계적인가??

 예전에 창조과학회를 통해 노아의 홍수를 들었을 때 노아의 홍수는 전지구적인 재앙이고 모든 인류를 홍수로 죽여야 했기 때문에 전지구적인 홍수여야 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홍수에 대한 증거로 퇴적암을 들어서 설명을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그랜드캐년이였다.  그랜드 캐년이 홍수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는 듣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 그러한 설명을 들으면서 무언가 해결이 되는 느낌이 들고 과연 성경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성경을 연구하면서 그리고 구약의 문학의 특징을 보면서 생각이 드는 것은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인류라고 해서 정말 모든 인류일까? 그리고 온땅을 덮었다고 해서 정말 전지구를 덮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성경을 우선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의 모든 말을 문자가 기록된 대로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은 알고 있다. 성경이 기록이 될 때는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고 그 내용을 통해서 읽고 있는 독자 모세가 기록을 했다면 모세와 함께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홍수가 전지구적인것이 아니라 국지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는 것은 기록하고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홍수가 일어나면 전지구가 홍수가 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고 산이 물에 덮일 정도의 물이 들이 차면서 홍수가 일어나는 것을 본면 온 세상이 멸망하고 물이 덮은 것으로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과격할 정도로 성경을 문자로만 해석해서 말하는 창조과학회를 하시는 분들은 홍수를 문자로만 이해를 하고자 하는데 홍수를 문자로만 이해하는 것보다는 이것을 통해서 어떤 것을 말하고 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세가 기록을 했다고 해서 모세가 역사학자로서 기록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기록을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 모세오경을 쓴 것이지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모세가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홍수가 국지적일 수 있고 전지구적인 홍수가 아니라고 해서 성경의 기록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긴다고 하는 것은 성경을 문자로만 받아드리고 문자로만 해석하는 세대주의자나 창조과학회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3. 홍수를 일으킨 하나님은 선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 부분은 신정론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싫어하지만 때로는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기도 하시고 악을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이시기도 한다. 홍수로 인해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시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선하다라고 할 수 있는가? 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확하게 구분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선과 악을 누구의 기준으로 나눌 수 있는가?"이다. 만약에 사람을 죽이고 멸망을 시키는 것을 두고 하나님은 나쁘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기준에서 나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만의 하나님의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고 세상의 창조자이신 분이라고 가정을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에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때문에 노아의 시기에 사람들을 죽인것 자체로만 놓고 하나님은 악하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다만 다른 나라의 신화의 홍수이야기와 비교를 해서 본다면 하나님의 성격을 명확하게 나올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수메르와 그리스와 이스라엘의 홍수의 시작은 신들의 노여움에서 시작이 되는데 신들이 화가나는 이유가 수메르와 그리스는 단순히 인간이 많아지면서 시끄러워지면서 신들이 화를 내고 인간을 홍수로 없애기로 한 것이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홍수의 시작은 인간이 번성하지만 인간의 죄가 많아지면서 인간을 없애기로 하였는데 한 가족을 남기는 것이였다. 여기서 수메르도 한 가족이 남은 것은 분명하지만 수메르는 한명(?)의 신을 제외하고 모든 신은 인간을 홍수로 죽이는 것을 찬성을 했고 반대한 신이 우트나피쉬에게 알려 주어서 홍수에 대비할 수 있었다고 말을 한다. 그리스의 신은 홍수를 일으켜 사람들을 거의 전멸을 시키는데 성공을 한다. 

 결과를 보면 그리스의 신들은 인간이 사라졌을 때 조용해졌다고 좋아했지만 자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인간이 사라지면서 신들은 굶게 되었고 굶주린 신들이 다시 인간을 찾아서 인간에게 제사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온다. 수메르는 신들은 자신들이 인간에게 내린 재앙을 좋아하면서 기뻐하고 있었었는데 인간들이 좋아했다. 다만 우트나피쉬가 살아남았고 그에게 홍수가 올것을 알려준 신은 그와 아내에게 영생의 땅을 허락을 한다. 그리고 세상은 신들을 위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다른신화는 인간을 시끄럽다고 홍수로 없애기로 하였고 여기에는 인간이 사라지고 신들이 좋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노아의 홍수에서는 인간의 죄로 인해 홍수를 일으킨 것이고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약속을 하는데 홍수를 통해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이러한 약속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다른 신화와 성경의 하나님을 비교한다면 전혀 다른 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홍수를 일으킨 것은 불가피하게 홍수를 발생시키게 하셨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벌어진 것임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신화와 비교했을 때 정말 나쁘다고 할 수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처럼 노아의 홍수에 대해 세가지 논쟁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는 이것보다 정말 많은 논쟁이 발생되고 있지만 그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3가지를 살펴보았고 보수적인 입장에서 노아의 홍수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말하고는 견해는 노아의 홍수를 과학적으로 현대 역사의 기준으로 살펴보는 것보다는 당시 이 글을 접하는 사람이 어떤 느낌으로 글을 읽었을지를 생각하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을 찾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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