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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오경 논쟁 1: 창조 대 진화

신학과 변증

by 오렌목사 2023. 2. 1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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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6일 창조인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수세기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묘사된 문자 그대로의 6일 창조를 믿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과학적인 진화 이론을 받아들입니다. 이 논쟁은 종교와 과학을 대립시켰고 현대 세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입니다.

 창조과학회와 같이 창조론을 성경의 기록으로 보고 6일 창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진화론을 받아드려 6일 창조를 거부하는 입장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6일 창조도 아니라 진화론을 받아드리는 입장도 아닙니다. 제가 보는 것은 창조이냐 진화이냐라는 입장이 아니라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창조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은것인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창조신학의 입장입니다.

 창세기를 기록할 때 1장과 2장에 창조의 내용이 두번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이것은 창조에 대하여 다른 관점에서 설명을 하고자 하는 저자의 목적이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1장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나타내고 2장은 관점을 다르게 하여 창조의 중심을 살피고 있다고 보여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준비하시는 과정이 나오는데 세상은 공허와 혼돈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느날(한글 성경의 첫째날을 히브리어성경을보면 어느 날로 번역할 수 있음) 하나님께서 창조를 "빛이 있으라" 라는 말씀과 함께 시작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창조의 날짜가 아니라 창조의 순서입니다. 날짜가 만약에 물리적인 시간이라면 엄청난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첫째 빛이 있고 난 뒤 땅이 생기고 바다가 생기게 되었는데 넷째날에는 해달별이 만드어집니다. 그렇다면 태양보다 지구가 먼져 생겨났다는 문제가 생기고 , 이것은 두번째 문제를 발생하는데 밤과 낮의 구분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구분을 할 수 있으려면 태양이 생기고 난뒤인 넷째날 이후에 가능한데 성경은 창조의 첫날부터 일곱째 날을 밤낮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의 기사를 의미로 파악하고 해석하는 입장에서 설명을 하는 것이 청조신학의 입장입니다.

 창세기를 처음 읽었을 때 받아드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 이것을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1-3일은 질서를 세우시고 나누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고 바다와 하늘을 나누시고 땅과 바다를 나누셔서 질서를 잡습니다. 그리고 4-6일 세워진 질서에 맞추어서 공허를 채우는 기간으로 심고 있습니다. 텅빈 공간을 구역을 나누었다면 그 구역에 따라 채워나가는 면서 충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4일째는 1번째의 날과 연결이 되어 공간으 채우고 5일째는 2일째와 연결이 되어 공간을 채우고 6일은 3일과 연결이 되어 공간을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완성이 된 상태를 하나님
께서 기뻐하시고 기념하시면서 거룩을 선포하고 안식일을 삼으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질서를 잡으시고 충만하게 채우시는 분이며 거룩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방민족들이 섬기는 우상의 상징들을 피조물로 표현하면서 하나님의 만물의 창조자이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다루게 될 내용이겠지만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바벨론 포로해방이 이후가 아니라 모세의 출애굽이후의 시기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2장은 창조의 반복이지만 또한 다르게 서술하고 있는데 이 부분 때문에 다루게 될 내용인 저자의 문제가 나오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중요하게 본것은 문서 비평에서 다루는 것 같이 2:5절 이하의 내용에서 여호와라는 사용에 주목해서 보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엘로힘)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고 2장에서는 여호와(야훼)라는 말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글래서 두명이상의 저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이부분을 주목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한 사람이 글을 썼다고 해서 단어의 사용이 항상 동일해야 한다는 것은 사람의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만한 판단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기록을 할때 이름과 호칭은 다르게 표현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호칭을 다르게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호칭이 다르게 쓰인 것은 저자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호칭의 변화과 호칭의 사용의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접근을 했습니다. 

 1장은 공식적인 하나님의 활동이고 권능과 위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습니다. 2장은 인간과 하나님간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라는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장은 하나님과 인간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창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이 살아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세상의 모든 질서를 세우시고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인간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을 만약 처음 듣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그것을 상상해보시면 정말 엄청난 기쁨과 놀라움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저는 창조와 진화를 과학적인 입장이 아니라 신학적인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과학에 억지로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과학에 억지로 맞추어서 해석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입장에서 하나님을 아는 백성의 입장에서 읽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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